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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의 추동력이 되었던 숭배 의식 축제와 제의 장소
근동에서 PPN 시기에 숭배 의식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은 예리코 유적지가 발굴되면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흔적은 몇몇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이 지역의 다른 많은 곳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특히 실제 해골 위에 반죽을 씌워 만든 조형물이 여기에 속한다. 일례로 이 유물은 요르단의 아인 가잘 지방에서도 발견되었는데, 이곳은 서남아시아에서 PPN 시기의 주거지 중 가장 면적이 넓은 유적지로 약 15 헥타르에 달해 예리코보다 몇 배 더 크다. 아인 가질과 예리코 두 유적지는 해골 모형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석고로 만든 사람의 입상(<그
림 14.2>)과 두상 및 흉상이 그것이다. 예리코에서 출토된 상들은 모두 파손된 형태였던 데 반해 아인 가질에서는 완전한 형태로 보존된 것이 다량 발견되었다.
이 조각상들은 특수하게 설치된 웅덩이에 보관되어 있었다. 조각상 크기는 약 1미터로 보통 신장의 절반을 약간 넘는 정도였지만, 신석기시대에 널리 분포되어 있었던 훨씬 작은 점토 조각상과는 확실한 대조를 보인다. 이러한 조형 창작물은 이를 만든 사람들이 인간 크기의 조각상 제작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갔음을 보여준다. 이와 더불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조각상이 순수한 예술적 맥락보다는 종교적이고 숭배 의식적인 맥락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조각상이 발견된 위치로부터 그때 제의가 어떤 식으로 치러졌을지 더 자세히 추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끔 이런 조각상이 조상 숭배의 잔재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들이 있지만, 이는 여러 해석 중 하나일 뿐이다.
토기 사용 이전 신석기시대에서 숭배 의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최근 수년 동안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상류,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발견되었다. 이 지역은 오늘날 터키 동남부에 해당된다. 증거 자료들은 이 지역에서 다양한 제의 행위가 있었음을 증명해준다.
발굴 초창기에 탐사된 지역으로 엘라즈으 지방의 차이가 있다. 이곳은 아나톨리아 동남부에서도 PPN A 시기 원형 가옥에
서 PPN B 의 사각형 가옥으로 넘어가는 전형적 변화과정이 있었음을 확인해주는 첫 번째 사례다. 이곳에서는 PPN B 후기의 일명 석쇠 형태의 가옥석쇠 모양처럼 사각형 공간이 밀집해 있는 형태의 가옥, grill-plan houses라고 불림이 나왔다. 이 가옥의 기저부에는 벽들이 좁은 간격으로 나란히 평행을 이루며 세워져 있었다.
PPN B 후기에 나온 건축물은 바닥 아래에 수로가 설치되어 있기까지 했다. 이러한 건축 방식은 건물에 최적의 통풍 효과를
만들어내고, 이로써 그곳에 보관되어 있던 식랑을 해충으로부터 더 효과적으로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고안되었다. 즉 저장물을 건조한 상태로 보관할 수 있는 최적의 방식이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곡물 저장은 당시 한 주거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차이외뉘에서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소위 특별 건물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 건물들엔 복잡한 숭배 의식 행위의 흔적이 보존되어 있으며, 예리코와 아인 가질 유적지에서 얻을 수 없었던 특별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제의 관련성이 역력히 나타나는 이런 건물은 보통 사각형의 형태를 띠며 하나의 공간으로 되어 있다. 일례로 차이외에 있는 판석집 형태를 들 수 있다. 이 건물은 사각형 모양으로 내부에 얇은 석회암 돌판을 깔았고, 중앙에는 석비 두 개가 세워져 있다. 또 다른 예
로는 PPN B 후대에 속하는 일명 해골의 집이 있다. 이 건물 안에서는 지하실 같은 작은 공간이 발견되었는데, 이 안에는 약 450명분의 해골이 있었고 얇은 돌판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이 공간 위로는 제단처럼 생긴 돌판이 있었다.
해골의 집은 주변에 다른 건물이 없는 곳에 위치해 있었고, 선돌선사시대에 세워진 길이가 긴 바윗덩어리과 비슷하게 생긴 비석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런 환경은 이 건물이 차이외 주거지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이보다 더 후대, PPN B 시기의 가장 끝 무렵에는 일명 테라초 집이 나타난다. 이 이름은 바닥 모양 때문에 붙여졌다. 테라초 기술은 토기 사용 이전 신석기시대 이후에는 로마 시대가 되어서야 다시 활용되었다. 당시 테라초 기술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PPN B 시기의 사람들이 고도로 숙련된 수공 기술과 특정한 재료 가공에 풍부한 지식을 보유했었다는 분명한 증거다. 그러나 이때 재료를 굳히는 과정이 어떠했는지는 오늘날까지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간 지난 후 건물 중간 부분을 뜯어내고 여기에 판석집과 유사하게 두 개의 석비를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더해 내부에서는 제단처럼 생긴 돌판도 발견되었는데 해골의 집에서 발견되었던 것과 비슷한 형태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돌판에는 거의 실물 크기의 단순화된 인간의 옆모습이 평면 부조로 장식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돌판은 차이외뉘에서 발견된 유일한 대형 조형 작품이다. 여기서 우리가 특별히 지적하고 싶은 것은, 발굴된 차이외 거주지가 정말 주거지 전체를 대표하는 경우로 볼 수 있다면 PPN B 내의 모든 시대적 단계에서는 각기 하나의 숭배 의식용 건물만이 존재했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PPN B 시기 동안 차이외 거주민들이 지녔던 발달된 기술 지식을 증명하는 것은 테라초 바닥 건축물뿐만이 아니다. 이들의 기술력은 그 당시에 이미 순동을 취급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서도 증명된다. 에르게니에서 가까운 광상에서는 순동이 아름다운 녹색을 자랑하는 공작석 형태를 띠는데 당시 사람들은 이를 가공해 구슬이나 다른 작은 물건을 만들었다.
이런 물건을 만들기 위해 구리를 망치로 두드리고 갈아내고 구멍을 뚫는 기술이 쓰였다. 하지만 열을 가하는 방법은 아직 사용되지 않았다. 만약 사용되었다면, 이는 야금술의 시작을 의미했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이 구리 광석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다만 구리가 가진 매력적인 색깔 때문이었을 뿐, 다른 암석과 똑같이 취급되고 가공되었다. 구리가 가진 용해 및 주조될 수 있는 특성에 대해서는 수천 년 후에야 알려지며, 그랬을 때 구리는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역사적으로 완전히 다른 맥락에 속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터키 동남부, 그중에서도 유프라테스강 북부에는 네발르초리 유적지가 있다. 이 유적은 다른 지역보다 보존 상태가 좋아 북메소포타미아의 토기 사용 이전 신석기 시기에 대해 차이외뉘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초기 주거 공동체의 숭배 의식 및 제의 행위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네발로 초리에서는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사각형 공간이 발견되었는데, 바닥이 테라초로 되어 있어 차이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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