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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골수 여성들

인포언급 2023. 4. 4. 23:13

외골수 여성들

케냐의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훨씬 늦게 무대에 등장했고, 199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세계적인 일류 선수들 사이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물론 여자 선수들의 경우도 난디족이 지배적이었다.


2003년에 실시한 한 설문조사는 열두 살에서 쉰 살의 사이의 여성 250 명에게 왜 달리기를 시작했는지 물었다. 질문에 응한 여성들은 올림픽이나 다른 국제 대회에 참가한 경력이 있거나 혹은 대단한 잠재력을 선보이던 청소년 선수들이었다. 응답자 중 절반은 돈을 벌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불과 20퍼센트만이 자신의 우상에게서 감화를 받았다고
말했으며, 1.5퍼센트가 기쁨을 위해서, 3.5퍼센트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달린다고 대답했다. 

 

음악을들으며달리는남자
음악을들으며달리는남자

 

케냐에서 평균 일당은 1유로(0.86파운드 혹은 1.40달러)가 채 안 되었고, 그래서 돈벌이 수단으로 달리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확실히 매력적인 일이었다. 달리기 선수는 1년 수입이 적어도 1만 달러는 되는데 그 정도면 고향에서 버는 돈의 열 배가 넘었다. 캐서린 은데레바Catherine Ndereba가 2001년 시카고 마라톤에서 세계기록을 깼을 당시 그녀는 1등 상금으로 7
만 5,000달러를 받았고, 세계신기록 포상금 10만 달러와 2만 6,000달러짜리 자동차를 부상으로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회 출전료와 우승 보너스도 있었다. 주요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다는 것은 수지맞는 일이자, 큰 돈을 벌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케냐의 여성 주자들에게는 남자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경제적 동기가 있었으니, 돈이 있으면 독립할 수 있었다. 케냐 여성들은 대개 땅과 재산을 소유하는 문제에서 배제되곤 한다. 그들은 땅을 상속받을 수 없고, 보통은 남자 친족들이 소유한 땅에서 산다. 은행에 돈이 있을 경우 그들도 자기 땅을 살 수는 있으나, 부유한 가족의 일원인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불가능하다. 성공한 케냐의 여성 주자들은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고, 실제로는 마을 전체를 부양할 수 있다. 그리고 케냐 여성들은 동료 남자 선수들보다 재산 문제에 훨씬 더 민감하다. 여자 선수들은 좀 더 성실하고, 돈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으며, 술독에 빠지지도 않는다.

 

외구인 조력자들

케냐에선 여러 나라 출신의 코치들이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활동을 해 오고 있다. 그들 가운데 한 명인 가브리엘 로사Gabriel Rosa 박사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모든 연령대를 대상으로 경기력에 맞춰 대회를 개최했다. 달리기에 관계된 다른 수많은 이탈리아 출신 코치나 의사들과 달리 그의 이름은 약물 스캔들로 얼룩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나아갈 길을 명확히 하고, 부정행위 혐의로 조사를 받은 어떤 누구와도 협력하지 않았다. 이전에 로사는 지아니 폴리Gianni Poli를 지도하여 1986년 뉴욕 마라톤에서 우승을 일궈냈는데, 이를 계기로 케냐 출신의 모제스 킵타누이Moses Kiptanui를 비롯해 몇 명의 선수들이 그에게 지도를 청했다.

 

1992년에 로사는 드디어 '케냐 발견Discovery Kenya' 이라는 프로젝트를 출범시켰고, 곧이어 이탈리아 회사인 필라Fil의 후원을 받게 되었다. 해외 주요 후원사들은 수십 년 전부터 케냐 육상을 후원하는 일이 그만한 값어치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로사가 처음 이 분야에 뛰어들었을 때만 해도 케냐에는 마라톤 달리기의 전통이 없었다. 1990년에 더글러스 와키후리Douglas Wakihuri가 케냐 선수로서는 유일하게 마라톤에서 세계 랭킹 20위 안에 들었고, 그다음에 두 명의 케냐 선수가 각각 80위와 100위에 올랐다. 14년 후 세계 랭킹 100위 이내의 마라톤 선수 가운데 절반이 케냐 출신이었고, 그중 대다수
는 로사의 제자였다. 


로시는 1993년에 최초의 훈련 캠프를 세웠고, 그 후로 주자들의 고향 가까운 곳에다 캠프를 열두 곳 더 늘렸으며, 그래서 200여 명의 선수들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훈련 캠프에서 선수들은 일찍 일어나 정신을 집중하고 조용하게 무리를 지어 달렸다.

 

그리곤 휴식을 취하다가 조금 더 훈련을 하고,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었다. 전자제품이나 휴대전화는
일절 사용할 수 없었다. 이곳은 그들의 대학이며, 유럽, 미국, 아시아 등지에서 개최되는 대회에 참가하려면 주자들은 우선 이 학교를 졸업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열심히 배우고자 했기 때문에 외국인들도 이 캠프를 방문하여 케냐 선수들과 합류했다. 그들이 이 캠프에서 발견한 것은 단순성과 규율이었다. 시간표에 적혀 있는 일이라고는 단순한 과제와 매일의 일상사들뿐인 이 훈련 캠프에는 시간을 초월한 뭔가가 있었다. 

 

선수들이 국제 대회 출전 자격을 얻고 찾아가게 될 현지의 환경과는 엄청나게 대조적이었다. 그들은 아프리카의 고지대에서 훈련한 후,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운 나라로 이동했다. 2008년에 케냐에서 해외로 나가는 가장 쉬운 경로는 달리기였으며, 그것은 이전 세대에 군대에 들어가 경력을 쌓는 것이 개인적인 출세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로사는 그들을 그룹으로 한데 묶어서 훈련과 금욕적인 생활 방식을 가르치고 싶었다. 훈련 캠프에 들어온 선수들은 달리기에 전념하기 위해 몇 달 동안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일터를 떠나야 했으며, 하루 두 번의 훈련, 긴장 풀기 그리고 올바른 식단'이라는 로사의 철학에 맞춰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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