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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깅 붐을 일으키다

인포언급 2023. 4. 4. 00:56

조깅 붐을 일으키다

1963년 2월 3일에 25명의 사람들이 조깅을 배우기 위해 나타났다. 그들은 걷기도 하고 구보도 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얻어 집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 일요일에는 참가자의 수가 두 배로 늘어났고, 그다음 주에는 2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중 4분의 1은 여성이었다.

 

얼해머는 후속 기사를 썼고 《라이프》 지는 유진 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보기 드문 현상을 취재할 계획을 세웠다. 네 번째 일요일에는 줄잡아 2,000~5,000명의 사람들이 트랙을 찾았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이자 바워먼은 겁이 났다.

 

조깅붐
조깅붐


건강이 안 좋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다가 혹시 그중에 누가 심장 발작이라도 일으켜 죽을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바워먼은 사람들에게 행사를 좀 더 철저하게 준비할테니 그때까지는 집으로 돌아가 당분간 집 근처에서 연습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랠프 크리스텐슨Ralph Christensen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는 바워먼을 유진 시의 심장 전문의인 왈도 해리스 Waldo Harris와 연결시켜주었다.


바워먼과 해리스는 각자의 전문 지식을 활용하여 함께 훈련 프로그램을 짰다. 처음 시작할 때는 1마일을 12분 안에 뛰도록 했는데 그 정도면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수준이었다. 유진 시의 대학에서 근무하는 4명의 회원들이 시험에 참여했는데, 이 시험 과정은 석 달 동안 점차 훈련 시간을 늘려가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그 대학 체육학과 학장인 찰스 에슬링거Charles Eslinger가 좀 더 큰 규모의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 그들은 100명의 중년 남녀를 모집해서(대개는 남성이었다) 10개의 집단으로 나눈 다음, 일주일에 3번씩 훈련을 하도록 했다. 

 

결과는 긍정적이었고, 대다수의 건강이 개선되었다. 그들은 체중이 줄었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활력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이번 성공에 크게 고무된 바워먼과 해리스는 뉴질랜드에서 건너온 메시지를 좀 더 널리 퍼뜨리고 싶은 열망으로(바워먼은 여전히 리디아드와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1966년에 팸플릿을 제작했다. 이 소책자는 이듬해에 《조깅, 남녀노소를 위한 신체 건강 프로그램 Jogging: A Physical Fitness Program for All Ages》이라는 얇은 책으로 발간되어 수백만 부가 팔려나갔다. 

 

바워먼은 미국에서 조깅을 장려한 유일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조깅 덕분에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여러분 중에 혹시 돈을 좀 벌고 싶은 사람 있나요? 1시간에 2, 3달러 정도?" 바워먼이 대학 육상부원들에게 물었다. 아르네 크발하임Ame Kvalheim 이라는 노르웨이 출신의 한 학생이 마침 1960년대 후반 유진 시에서 육상부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학생이 손을 들어 학과가 시작되기 전에 자신이 조깅 회원들을 위해 조교로 활동하겠다고 지원했다.


조깅 회원들은 차를 타고 아침 6시 30분까지 오기로 했다. 살찐 사람도 있고, 마른 사람도 있고, 건강이 안 좋은 사람도 있고, 그나마 몸매가 조금 괜찮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정평이 난 유명 선수들에게 지도받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그들은 바워먼의 계획에 따라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100야드를 걷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다음에는 같은 거리를 가볍게 달

렸다.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이 1마일 이상의 거리를 쉬지 않고 달린다는 것은 힘들 뿐 아니라 따분한 일이기 쉬웠다. 크발하임은 노르웨이에서 이런 식의 프로그램을 접한 적이 없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미국인들에게도 생소한 것이었다. 

 

물론 시합을 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어쨌든 곳곳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는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에 산업화된 국가의 보통 시민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무리를 지어 달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신종 주자들은 바싹 마른 전문 주자들과는 현저하게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들의 달리는 속도는 무척 느렸다. 그들은 다른 이유로 달리고 있었다. 우승하거나 개인 기록을 세우려는 게 아니라, 운동을 하고 체중을 줄이기 위해 달렸다.


유진 시의 조깅 모임은 이렇게 달리기와 걷기를 번갈아 하며 총 2마일을 소화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트랙을 여덟 바퀴 도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3개월 과정으로 훈련하는 동안 훈련량을 점차 늘려나갔다. 그들은 일주일에 3번씩 만났고, 빠른 발전 속도를 실감했다. 건강하지 못했던 사람의 건강 곡선이 빠르게 상승했다. 6주 후에는 265파운드(약 116킬로그
램)나 나가는 거구의 치과 의사가 쉬지 않고 2마일을 조깅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몸무게를 고려할 때 실로 인상적인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조깅 붐은 뉴질랜드에서 미국으로 퍼졌고, 거기에서 다시 유럽으로 확대되었다. 일단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달리기 시작하자, 다른 산업국가 사람들도 그 뒤를 따랐다.

 

뚱뚱하고 건강하지 않은 의사

전국적인 규모로 달리기 붐을 조성한 의사 중 가장 유명한 이는 케네스 쿠퍼Kenneth Cooper였다. 그는 잘 팔릴 만한 책들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가 1968년에 출간한 저서 <에어로빅스 Aerobices>는 40년이 지난 지금 관점으로 보기엔 훈련과 건강의 문제를 유치한 수준으로 다루고 있어 다소 진부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동차가 왕인데다가 1930년대 대공황의 고통을 벗어난 지 이제 겨우 한 세대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아직도 대
다수 사람들이 빡빡한 생활에 쫓겨 운동하는 방법을 거의 잊고 살아가던 상황을 감안하면 쿠퍼가 함부로 말을 꺼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건강에 안 좋은 음식과 운동부족은 심장 질환의 증가로 이어졌고, 문명의 발전이 야기한 다른 질병들, 이를테면 당뇨병과 비만도 점점 더 흔해졌다.빌 바워먼과 케네스 쿠퍼가 전달하려 한 메시지는 줄곧 앉아서만 지내는 현대인의 생활 습관을 뒤집어엎지는 것이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체육 교육을 장려했다.

 

대통령 본인도 애디슨 병 ddison's Disease(부신피질 호르몬의 분비 부족으로 일어나는 병, 전신의 피로감과 탈력감, 피부와 구강점막 등의 갈색의 색소 침착이 특징이다옮긴이)으로 고통받았고, 대중 앞에 드러내진 않았지만 종종 목발을 짚기도 했다. 체육 교사나 물리치료사 그리고 군대에서 기본 훈련을 담당하는 교관 등과 같은 신체 교육 전문가들은 모두 미국 국민의 체력이 쇠퇴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케네스 쿠퍼는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달리기를 했다. 동년배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 역시 그 이후로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체중이 많이 늘었다. 1960년에 학업을 마친 후 군대에서 첫해를 보낼 때 그는 가장 좋아하는 취미인 수상스키를 타려고 했는데, 로프를 붙잡고 불과 몇 초가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 경험은 높아진 혈압 수치나 자잘한 만성질환들과 더불어 쿠퍼의 활력이 상실되었음을 알리는 심각한 징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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