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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아뉴기니에서의 원시 농업과 환경의 변화

태평양 전역에서 농업의 기원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열쇠는 파푸아뉴기니의 고원 지대다. 여기서 중점적으로 조사되었던 것은 인간 주거의 역사와 쿡 습지대에서 식물의 원시 경작이다. 쿡 유적지는 그 발달 과정을 가장 잘 추적할 수 있는 곳이었다. 고고학적 자료와 고대 생태계 연구 자료를 참조할 때 이곳에서 농경은 이미 기원전 8000년경에 시작되었던 것이 확실시된다. 즉 파푸아뉴기니는 세계적으로 봐도 원시 식물 경작을 했던 가장 오래된 지역 중 하나라는 것이다. 생산 경제는 해안에 바로 면한 내륙 지방 저지대에서 먼저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 조건이 좋아지면서 생산 경제는 떡갈나무 혼합림과 더불어 서서히 고원 지대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흔적은 고원 지대의 특별한 보존 여건 덕분에 남아 있게 되었다. 하지만 파푸아뉴기니고원에서 기원전 8000년부터 독자적으로 농업이 발전했다는 시각에 모든 학자가 동의 하는 것은 아니다. 

 

파푸아뉴기니에서 재배종 식물을 기르고 이에 상응하는 농경 기술이 나타나는 등 농경이 꽃핀 것은 훨씬 나중이며, 그것도 오스트로네시아족의 유입과 함께 외부에서 도입된 것이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뉴기니고원에 거주를 시작하면서 이곳의 자연 상태는 처음으로 인공적인 변형을 겪는다. 당시에 이미 울창한 숲에 일부러 불을 놓아 넓은 길을 내려는 시도가 있었다. 플라이스토세 후기와 홀로세 초기인 기원전 1만2000년 이후 우림 지대를 개간하려는 시도는 더 증가했고 훨씬 넓은 면적을 이용할 수 있었다. 쿡 일대에서는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던 기원전 8000년경부터 지형이 인공적으로 크게 변화했다.

 

원래 숲이었던 많은 지역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변형된 모습의 숲, 늪이 있는 습지대, 넓은 초원 등 알록달록한 지형이 형성되었다. 유물에서는 많은 목탄이 발견되어 원시림에 일부러 불을 놓아 땅을 개간했음을 증명해준다. 홀로세 중반(기원전 4000년에서 기원전 3500년까지)에는 뉴기니고원의 우림이 한 번 더 크게 개간되었고, 기원전 2500년부터는 원래 숲이었던 곳 대부분이 사라졌다. 

 

하지만 숲의 경계였던 지역에서는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숲이 재생되기도 했다. 홀로세 중반경까지 일어났던 지형과 환경의 변화는 상당한 것이었다. 숲이 완전히 없어지고 초지로 변한 산등성이도 여럿 생겼다. 

 

인간 역사에서 이 지역만큼 그렇게 이른 시기에 인간이 자연에 개입해 환경에 큰 영향을 끼친 곳은 없었다. 쿡 유적지에서는 주거 역사가 여섯 단계로 발달했다. 특히 흥미를 끄는것은 1단계에서 3단계까지 있었던 배수로 시설이다.

이 배수로 시설은 후기 단계인 4단계에서 6단계와 형태적으로 매우 분명한 차이가 난다. 먼저 후기 배수로는 규격화되고 조직적이었는데 직선, 평행선, 직각이 규칙적으로 조직된 그물망 형태로 넓은 면적에 걸쳐 있었다.

 

하지만 1단계에서 3단계의 유적은 서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기원전 8000년경에 속하는 1단계에서는 불규칙적으로 배치된 배수용 수로가 몇 군데 눈에 띄는 정도였다. 더욱이 이 수로들은 임의로 끊어지고 길이와 넓이도 제각각이었다. 그 사이에는 기둥을 박았던 흔적과 구덩이, 그리고 해석하기 힘들지만 여하튼 집터의 흔적이라고 볼 수 없는 자국이 있었다. 

 

이 단계 유적에서는 무기화된 바나나 계통 식물의 잔해, 타로열대 아시아가 원산지인 덩이줄기 식물, 한국에서 재배하는 토란은 이 식물의 변종이다의 잔해 및 인공 제작물 몇 점이 발견되어 1단계에서도 토착 식물 재배가 실험되었을 수 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타로는 천남성과에 속하는 식물로 덩이줄기 (리즘)에는 전분이 많이 들어 있어서 식량으로 이용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쿡 2단계는 기원전 5000년 전에서 기원전 4500년 사이에 해당된다. 당시 주위 지형은 이미 상당 부분 숲이 없는 초지로 바뀌어 있었다. 이 시기 배수용수로는 서로 연결되어 망을 형성했고 원형 또는 타원형의 언덕 비슷한 둔덕 가장자리에 설치되었으며, 그 둔덕에는 식물이 재배되었다. 이곳에서는 수분 필요량이 각기 다른 식물들이 나란히 배양되었다.


가령 물이 더 많이 필요한 타로는 둔덕의 가장자리, 그러니까 배수로와 더 가까운 곳에 심었고 사탕수수와 바나나 등 물이 더 적게 필요한 종들은 둔덕 높이 위치한 곳, 즉 물에서 더 떨어진 곳에 심었다. 생강은 이미 홀로세 초기부터 재배했던 것으로 보인다. 홀로세 중기에는 사탕수수가 처음 모습을 보였다. 

 

이 식물들 모두 영양가가 매우 풍부하고 칼로리가 높았기 때문에 선사시대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식량이 되었다. 원시
거주민 집단들이 뉴기니고원 열대 우림에 들어올 수 있게 되고 나아가 지속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이 영양가 높은 식물들을 경작하고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위에서 언급한 식물 종만 이용한 것이 아니었다. 그 사이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다른 다양한 식물도 존재했다. 이는 쿡 1단계부터 3단계까지에서 나온 식물 화석, 꽃가루, 식물의 씨앗을 통해 증명된다.

 

이 기간 동안 식물을 이용하는 방법은 각기 달랐다. 처음에는 주로 채집한 야생식물을 이용했다. 이미 쿡 2단계에서는 이후에 파푸아뉴기니고원에서 재배 식물이 된 몇몇 종이 발견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식물들의 경작이 시작된 시점이 훨씬 초기로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