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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스텝과 숲 지대에서의 사냥, 어로, 채집
아시아 북부는 여러 생태지역으로 구분된다. 아시아 북부에서 가장 남쪽, 아랄해와 비슷한 위도에는 사막 비슷한 지대가 위치해 있으며 그보다 북쪽으로는 먼저 스텝 지대가 나타나고 이어서 숲스텝 지대, 시베리아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타이가 기후대가 그다음에 나타난다. 그 위로 숲 툰드라가 이어지고 북극해 바로 남쪽의 툰드라 지대로 넘어간다.
이 남북으로 이어지는 기후대 스펙트럼은 거의 평행선을 그리며 연속적으로 시베리아 서쪽 절반에 걸쳐 서쪽에서 동쪽으로 펼쳐진다. 중부와 동부 시베리아에는 북쪽의 툰드라 경계지역에서 남쪽의 산악지대까지 타이가의 침엽수림이 펼쳐져 있다. 이 산악지대는 남쪽으로 인접한 몽골 및 중국 영토로부터 시베리아를 분리시킨다. 남부 산악지대 북쪽의 스텝과 숲
스텝은 산맥 때문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더 펼쳐지지 못하고 기껏해야 예니세이강I 같은 커다란 하천 유역에 나타나는 것으로 그치며, 대부분 시베리아 남부에 국한돼 있다.
동북쪽의 레나강 평원에는 스텝 지대가 훨씬 적게 나타나는데 기후 조건이 시베리아 남부 경계지역과 차이가 많이 나
기 때문이다. 북아시아의 서부 지역에는 사막과 유사한 건조 지대, 스텝, 숲스텝, 숲 지대의 기후적 구분이 나타나며 이는 남쪽의 산맥지대 이남 지역에서 현재의 몽골과 북중국 지역 등 동쪽으로 계속된다.
모든 기후 변화, 특히 기온과 강수량 변화는 해당 기후대에서의 자연조건(생식, 지형)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모든 변화는 각 생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변화된 환경 조건에 적응할 것을 요구한다. 기원전 6000년대, 보레알 시기 동안 기온이 하강하고 강수량이 급격히 감소한다. 그다음, 북아시아의 신석기와 동기시대에 해당되는 기원전 5000년대에서 기원전 2000년대 후반까지의 애틀랜틱기에는 현저한 기온 상승과 강수량 증가가 일어난다. 이 시기 시베리아의 겨울은 현재보다 따뜻했고 여름에도 평균 기온이 약간 더 높았다.
이에 반해 넓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기온은 오늘날보다 약간 더 낮았으나, 연간 강수량은 비슷했다. 유라시아 북부에서 더 높아진 평균 기온과 증가한 강수량은 식물상과 동물상이 발전하는 데 이상적인 기후 조건이 되었다.
생태 번식력이 최고조에 달했고 숲 지대는 최대로 확장되었다. 역사상 툰드라와 침엽수림의 경계지역이 애틀랜틱기에서만큼 북쪽에 위치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후가 얼마나 온난했는지 짐작이 간다. 홀로세전 기간에 걸쳐 기후는 계속 여러 변화를 겪었고 그중에는 오늘날까지 지속되면서 몇몇 식생 지대에 장기적인 영향을 끼쳤던 변화들도 있다. 반면 유라시아 북부 지형 중에는 이미 보레알 시기에 기후 대 분포의 기본 윤곽이 잡히고 (나중에 나타난 작은 변화들을 제외하면 애
틀랜틱기에서 형성과정이 마무리된 그런 곳도 있다. 애틀랜틱기의 유리한 기후 조건에도 불구하고 스텝 스텝, 시베리아의 숲 지역은 조상들이 원시 농경과 정착생활을 발달시킨 곳에 속하지 않았다.
보통 인류는 일 년 내내 식량을 풍족하게 구할 수 있는 장소에서만 지속적으로 거주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시베리아 원시 문화기에 사람들이 사냥, 어로, 채집과 비정착인 생활 방식을 취했던 것은 자연이 제공하는 식량 자원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시베리아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수렵 채집 생활자들이 살았다. 이들은 이후 신석기시대에도 오랫동안 사냥, 어획, 채집 생활을 했다. 하지만 중석기시대에 이미 수렵 채집 생활은 복합적인 형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풍족하게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는 더 확실한 식량 공급원을 이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들은 반 정착생활을 했고 한 계절용 야영지를 찾았다. 또한 전문적인 채집 전략을 활용할 줄 알았고 사냥과 어획 같은 특정 행위에 적합한 특수한 도구도 갖고 있었다. 인구 밀도는 이전 후기구석기시대보다 높았다. 또한 이미 소수의 사람들이 공동체 에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사회경제적 분화가 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더 부유하게 꾸며진 무덤들이다. 이후 이어지는 북시베리아 침엽수림과 툰드라 지역에서 나타난 발달 과정은 인간이 더 불리한 자연환경 조건 속에서도 복합적인 수렵 채집 생활을 발달시킬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중에는 이러한 생활 형태가 심지어 중세 초기까지 지속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도 있다. 식량의 기본은 육류와 어류였던 듯하며, 베리류 식물, 식물 뿌리나 그 비슷한 식물류도 채집했지만 식용 식물은 부차적인 역할만 했다.
생존의 근거가 되었던 동물은 계절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수가 달라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 방식을 사냥감의 생활 습성에 맞추어 적용시켰다. 이런 이유에서 보통 수렵채집 공동체는 태곳적부터 이동이 잦다. 그럼에도 이곳에 살았던 공동체들은 상이한 삶의 방식을 발달시켰다.
즉 계속 이동하며 단기적으로만 살기 위한 야영지를 설치했던 공동체가 있었는가 하면 이미 정착생활을 했던 집단도 있었다. 후자의 경우 고정된 주거 장소가 점차 중요해졌고 주거지를 중심으로 더욱 한정적인 행동반경에서 생활했다. 여기서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은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한 집단의 이동성은 식량 공급에서 사냥이 지닌 전략적 의미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이런 집단은 사냥 동물의 뒤를 따라 이동생활을 해야 했지만, 고기잡이에 더 치중하는 집단들은 아주 이른 시기에 이미 정착생활을 시작하는 경향이 컸다.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중석기시대 및 신석기시대 주거지들은 호수와 강가에 있었고 일차적으로는 계절적으로만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름은 고기잡이의 최적기였다.
주로 어획에 의존하는 집단은 여름 동안 공동 목적을 위해 연합관계를 맺고 어획량이 풍부한 하천에서 거주했다. 물고기를 더 이상 잡을 수 없는 겨울에는 다시 해체되었고 이듬해 이른 시기에 다시 모였다.
시베리아의 이 문화는 신석기 문화라 불리지만 수렵 채집 공동체라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가축사육은 나중에야 조금씩 단계적으로 경영되었고, 현재로서 농경이 이루어진 적이 있다는 단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석기시대의 중요한 성과, 즉 식물의 재배화와 가축사육을 통한 생산 경제, 한 장소에 정착해 사는 생활 방식은 북아시아 신석기인에게는 나타나지 않았고 나타났다 하더라도 산발적인 형태로만 존재했다.
때문에 이 문화를 신석기시대로 분류할 때 그 근거는 오직 유형 문화 유물에서 나타나는 발달을 기준으로 한다. 일각에서는 우랄 지역 서쪽 숲지대에서와 같이 숲 신석기시대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유형 문화의 유물 발달 상황은 특히 석기에서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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