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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명의 위대한 러너
노르웨이 사람인 멘슨 에른스트Mensen Ermst(1795~1843년)는 소인 Sogn 지방의 프레스빅이라는 곳에서 한 소작농 집안의 일곱 아이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몬스 몬센외렌Mons Monsen Ohren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성인이 되어 이름을 바꿨다. 개명은 바다로 나가 일하다 외국으로 이주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몬센 외렌은 영국 선단에서 멘슨 에른스트가 되었다.
1812년경 그는 바다로 나갔다. 칼레도니아 호를 타고 세계의 대양을 항해했고 인도, 호주, 중국 등의 머나먼 항구들을 방문했다. 그리고 남아프리카에 갔을 때는 달리기 시합에 나가 승리하기도 했다. 출렁거리는 배 위에서 오래 지내다가 육지에 올랐을 때 뱃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에른스트가 1818년에 항해를 그만두고 런던으
로 돌아왔을 때는 세계의 풍습에 익숙하고, 여러 나라 말에 능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제 그는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런던은 큰 꿈을 지닌 주자가 살기에는 더 없이 완벽한 곳이었고, 많은 외국인들이 시합을 치르기 위해 그곳에 모여들었다. 에른스트는 내기 경주를 통해 뱃사람 급료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고, 자신의 진정한 소질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는 1820년에 런던을 떠나 독일로 가서 뭘하우젠과 딩겔슈타트 중간쯤에 있는 안넨로드라는 영지에 정착했다. 뱃사람 시절에 에른스트는 이영지 소유자의 장인 되는 사람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4년간 행복한 세월을 보낸 후 그는 다시 길을 나섰지만, 안넨로드는 늘 간절히 되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장소로 일생 동안 그의 기억 속에 남았다.
그는 과일과 빵 그리고 포도주를 기본 식단으로 삼아 검소하게 먹고 살았으며, 돈의 액수가 크건 작건 상관없이 어디에서나 경주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스위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지를 돌아다니며 경주를 하고 다시 독일로 돌아가곤 하는 식이었다. 그는 뜨거운 음식은 거의 먹지 않았고 육류는 정규 식단에 포함시키지 않았으나 포도주는 아주 좋아했다.
그는 모험가였으며, 달리기 재능 덕분에 스포츠 여행가로서 유럽에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또한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상당히 많은 책을 읽었고, 학식 있는 사람들과 어울렸으며, 훌륭한 도서관들에 출입하면서 새로 나온 지도들을 접해 자신의 여행 계획에 활용했다. 그는 노르웨이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았지만, 1826년 겨울 코펜하겐에서 국왕을 포함해 수천의 관중을 끌어모은 스포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덴마크를 방문한 적은 있었다. 그는 소작농의 아들이었지만, 주자로서 거둔 성공 덕분에 귀족들도 한번 만나보고 싶어 하는 사회 저명인사가 되었다.
에른스트는 70군데가 넘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왕가 사람들, 지체 높은 귀족들, 일반 대중 등 다양한 관객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상연했다. 그는 인쇄공에게 주문한 홍보 포스터를 직접 붙이며 자신의 경주 행사를 선전했다. 그가 해당 지역의 지체 높은 인사들이나 유지들을 방문하고, 또힘 있는 사람들이 경주를 보러 찾아왔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광고 효과가 있었고, 행정 관리들과의 관계를 수월하게 해주었다. 그는 명성을 누렸고, 그의 명성은 유럽의 귀족 가문과 왕가 사이에 두루 퍼져나갔다. 유럽 명문가들의 유대 관계는 모든 국경을 가로질러 맺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1830년에 덴마크의 오덴세 시를 방문했다. 지난해부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르웨이 출신의 유명한 주자가 7월 초
파리를 포함해 영국과 프랑스를 방문했고, 최근에 이곳을 찾았다. 지난주에 그는 우리에게 매우 고차원적인 기술을 선보였는데, 발에 약 2피트 길이의 죽마를 신고 달리는 묘기였다. 셋째 장날이었던 6일(수요일)에 그는 오덴세 시내 우체국에서 베스터포트까지의 거리를 죽마를 타고 26분 만에 4번 왕복했다. 그리고 죽마를 떼고 같은 거리를 훨씬 더 짧은 시간에 주파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먹고살 돈을 벌지 않아도 생활이 어렵지 않은 꽤나 부유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그가 체질적으로 이런 일에 익숙하고 또한 이런 수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며, 그가 여행하는 삶의 묘미를 만끽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은 마을에서 펼치는 이런 종류의 달리기는 이제 식상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불가능한 업적으로 여겨질 법한 엄청난 일을 해내고 싶은 야망이 있었다.
1832년 7월 11일, 그는 모스크바까지 1,600마일의 거리를 15일 안에 주파하기 위해서 파리를 떠났다. 내기꾼들은 그가 과연 이 일을 해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그가 출발하자마자 술 취한 소작농들이 길을 가로막고 그를 꽁꽁 묶어서 수레에 실어버렸다. 그는 꾀를 내서 소작농들에게 그들이 가진 가장 빠른 말과 달리기 시합을 하겠다고 제안했고, 결국 이 난
관에서 벗어났다. 그는 독일을 지나 폴란드로 들어서서 크라쿠프를 향해 계속 달렸다. "대로를 따라, 그리고 시골 들판을 가로질러 거침없이 뛰어 가는 그를 본 사람들은 그를 괴짜라 생각했고, 심지어는 미쳤거나 귀신이 들렸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본 것은 비바람에 잔뜩 시달린 얼굴에 작고 야윈, 잿빛 머리카락의 사내였다. 고생이 그의 얼굴에 금세 흔적을 남겼던 것이다. 그는 특별히 속력을 내지 않았고, 1시간에 6마일 정도를 주파했으며, 오르막에서는 속도가 더 떨어졌다. 하지만 에른스트는 잠을 자는 데 시간을 많이 낭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리는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는 최단 시간에 최대한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길을 가다가 땅바닥에 바로 누워 노숙하는 쪽을 선호했다. 수면이나 휴식을 거의 취하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능력은 어둠 속에서도 별빛과 달빛의 인도를 받아 경로를 이탈하지 않고 더 많은 거리를 달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뱃사람으로 살던 시절에 획득한 방향감각은 그가 나침반, 목제 상한의(象儀, 고도 측정 기구-옮긴이), 지도등을 가지고 낯선 나라를 쾌속으로 통과해 지나갈 때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6월 19일 저녁, 그는 헤움 근처의 러시아 땅에 당도했고, 그와 모스크바 사이에는 아직도 넓은 평원이 최후의 직선 코스로 남아 있었다. 닷새 후, 그는 20년 전 나폴레옹이 러시아와 전투를 벌였던 보로디노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다. 모스크바까지는 하루 정도 걸으면 도착할 수 있었고, 그에게는 아직도 48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만족스러웠던 그는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이 날은 여인숙에서 묵기로 했다. 그러나 시간에 쫓기는 다급한 여행자의 행색이 분명한 그의 기이한 외모에 사람들은 의구심을 품었다.
통행 허가증을 보이며 자기가 누군지 이해시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허가증은 몰수당했고, 멘슨 에른스트는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냉철했다. 굴뚝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벽난로 입구의 돌들을 벌린 그는 굴뚝 속으로 타고 올라가 지붕 위로 나왔는데, 그만 거기서 발각되고 말았다. 다행히 지붕에는 마당으로 내려갈 수 있는 사다리가 걸쳐져 있었고, 그는 재빨리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마을사람들은 그를 따라잡을 수 없었고, 멘슨 에른스트는 늦어도 6월 26일 밤 11시에는 도착해야 하는 모스크바를 향해 다시 길을 떠났다.
예정보다 하루 일찍 오전 10시에 땀에 흠뻑 젖은 낯선 남자가 크렘린 궁전의 성문을 지키는 근위병 앞에 와서 멈춰 섰다. 일단 러시아인들이 상황 파악에 나섰고, 멘슨 에른스트가 여행길에 지니고 온 프랑스 신문을 건네주자 그들은 정중한 프랑스어로 그를 기쁘게 맞이해주었다.
그는 군중의 환호와 축배를 받은 후, 이번에 새로 따낸 두둑한 액수의 돈을 주머니에 챙겨 넣고 한 여인숙으로 조용히 물러났다. 하지만 좋은 침대에서 자고 싶은 욕심이 없었던 그는, 모스크바에서 지내는 내내 나무 의자를 잠자리로 택했다. 그가 모스크바에 도착했다는 전갈은 그 시대의 가장 빠른 통신 수단인 수기 신호 체계semaphore telegraph를 통해 파리로 전해졌다.
14일 동안 1,600마일(2,575킬로미터)을 달렸다는 것은 하루에 약 115마일(185킬로미터)을 주파했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긴 기간 동안 이런 평균 주파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만, 당시 에른스트는 최고의 절정기였고 훈련이 잘 되어 있었으며 경험이 풍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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