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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들의 달리기
기원전 3100년에서 3000년 사이에 이집트 나일강 유역에서는 제대로 된 체계를 갖춘 왕국이 탄생했으며, 그곳에는 궁술, 레슬링, 권투, 승마 등에 관한 당시의 고고학적 증거가 남아 있다. 이집트 사람들은 달리기와 수영을 자주 했고 노 젓기와 검술, 공을 가지고 하는 경기도 즐겼다. 이곳에서 전령은 달리는 보병으로서 마차를 타고 여행하는 지체 높은 사람들을 호위했다. 이들은 군인 신분으로 달리기가 빠른 자들 가운데서 선발되었다.
추수감사 축제인 헤브세드Heb Sed, 즉 '여우 꼬리 축제' 때 왕들이 달리기 의식을 치렀던 것은 매우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여우 꼬리' 라는 이름은 초기 이집트 시대에 파라오들이 입는 옷의 등에 꼬리가 붙어 있었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헤브세드는 파라오의 왕국이 건설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거의 3,000년 동안 거행되었다. 처음에는 기수(手)들을 앞세워 병사들을 행진시키는 군사적인 성격의 축제였는데, 거기에 상류계급 출신의 전쟁 포로들이 처형당하기에 앞서 왕국의 경계를 상징하는 표시물들을 빙 돌아서 뛰어갔다 오는 달리기 행사가 포함되었다. 그러다 후대에 이르러서는 그냥 왕만
달리게 되었다.
람세스 2세(기원전 1303~1213년)는 기원전 1278년부터 66년 동안 이집트 파라오의 권좌를 지켰다. '대관식에 앞서 그는 피라미드 앞에서 개최되는 시끌벅적한 축제에 나가 자신이 왕좌에 앉을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달려야 했다. 그는 초자연적인 권능의 도움을 받으며 150야드의 트랙을 혼자서 달렸다. 그는 힘을 돋우는 강장제를 마셨고 신성한 음식
을 먹었다.
30년 후, 그는 자신이 여전히 생명력과 통치 능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같은 거리를 달려야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3년 내지 4년마다 한 번씩 그는 높이 솟은 피라미드 아래서 개최되는 추수 감사축제에 나가 달려야 했고, 그런 검증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백성들도 그곳에 나와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집트에서는 나라의 모든 일들,
심지어는 개개인의 일상사마저도 람세스에게 의존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바로 세계의 중심이자 조화의 보증인이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람세스 한 사람만이 신들과 직접 접촉하여 신들이 지닌 강력한 힘을 공유할 수 있었다.
신들의 대리인으로서 그는 신들의 창조물들을 보존해야 했으며, 따라서 무기력하고 나약한 통치자는 전 우주의 질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 왕국의 영토를 상징적으로 명시해주는 것이기도 했던 이런 달리기의 임무를 람세스는 아흔 살이 될 때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고고학자들은 이집트에서 달리기 시합이 벌어졌다는 흔적을 거의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날쌘 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날쌘 자' 였던 사람들이 나누비아 사람과 이집트 사람을 통틀어 내가 이 도시에서 제일 빨랐다"
와 같은 얘기들이 문헌에 언급되어 있는 것을 찾아볼 수는 있다."
최근에 멤피스에서 파이의 오아시스로 이어진 오래된 도로변에서 기원전 685년 12월 6일에서 684년 1월 5일 사이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이 유적을 통해 이집트인들의 달리기에 관한 좀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당시는 타하르카Taharqa 왕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의 명령으로 "왕궁의 서쪽인 서부사막"에 "태양의 아들타하
르카의 군대를 위한 달리기 훈련" 에 관한 글귀를 새긴 비석이 세워진 것이다.
왕은 번개 같은 공격을 수행하기 위하여 병사들을 선발해 사막에서 훈련시켰다. 훈련 숙소를 돌아본 그는 병사들의 단련된 몸을 보고 크게 기뻐했고, 멤피스에서 사막을 통과해 파이에 도착하는 달리기 경주를 준비시켰다. 제왕은 마차를 타고 경주에 동참했지만, 일부 구간에서는 이따금씩 마차에서 내려 군인들과 함께 달리기도 했다. 그렇게 권세 높은 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 얘기는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왕이 병사들과 똑같은 처지가 되어 같이 행동한다는 것은 병사에게 무척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일이었다. 그들은 한밤중에 파이에서 2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다시 함께 출발해서 새벽녘이면 멤피스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자는 추가로 보상을 받았고, 완주한 자들에게도 상이 주어졌다. 기념비석에
따르면 그들은 멤피스에서 파이까지 30마일의 거리를 4시간에 주파했으며, 돌아올 때는 그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병사들이 지친데다 체온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달리기란 보통 종교적인 의식이었으며, 때때로 군대 생활과 연결되기도 했고, 신들과의 의사소통 수단이기도 했다.
그것은 또한 지중해에서 번성한 또 다른 스포츠 문화, 즉 그리스 스포츠 문화의 선조 격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러한 그리스의 문화가 현대 스포츠 발전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고고학자들은 수메르에서 스포츠 경기장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시가(詩歌)나 행정 문서에는 권투와 레슬링이 언급되어 있다. 수많은 백성들이 여가 시간을 즐겼는데, 건강을 중시했던 이 사회에서는 공을 갖고 하는 시합들도 흔히 벌어졌고, 공놀이 곡예사와 체조 곡예사들이 공연을 펼쳤다. 달리기는 흔히 숭배 제례와 결부되곤 했는데, 축제나 연회가 시작되
기 전에 왕이 거느린 전령 중 가장 빠른 자들이 신들에게 제물로 바칠 양과 염소를 끌어오는 데서 알 수 있듯, 종교와 스포츠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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