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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도시화
토기 사용 이전 신석기시대(PPN A와 PPN B)인 기원전 9000년대에서 기원전 6000년대 사이 일명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자연·경제·문화적 조건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경험을 겪게 된다. 정착생활과 식물 재배, 동물 사육이라는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이 변화는 전체 인간 역사에서 가장 파급 효과가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다음
과 같은 질문이 필연적으로 따라 나온다. 이 시기에 일어났던 새로운 발견들 중 이후 수천 년 동안 근동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것은 무엇인가?
토기 사용 이전 신석기시대가 끝나고 이어지는 시기의 주요 특징은 토기의 발명이다. 이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토기는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토기는 수많은 형태로 구워졌고 온갖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또한 사람들이 장식하기 좋아하는 대상이었다.
때문에 무늬 형태를 보면 기본적으로 어느 시기에 어떤 주거 공동체들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런 공동체를 (방법적으로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으나 '문화' 또는 '문화 집단'으로 즐겨 부르곤 했다. 여기에 더해 각 집단을 구별하게 해주는 또 다른 표식도 생각할 수 있다. 고유한 의복이나 신체의 채색, 문신 등이 그러한 것으로, 어쩌면 토기 무늬보다 더 분명한 정체성 표현으로 기능했을 수 있다.
하지만 선사시대 유물로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 토기 사용 신석기시대의 최초 시기는 자르모와 움 다바기야 같은 유적지로 대표된다. 이들의 역사는 기원전 6000년대 전반부에 시작되면서 PPN B의 뒤를 이었다. 토기 이전 시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토기 시대에 의해 해체되었는지, 겹치는 시기는 없었는지 등의 문제는 앞으로의 연구가 밝혀야 할 숙제다. 분명한 것은 괴베클리 테페와 같은 PPN B의 중심지에는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이전에 주요 주거지역이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변의 비옥한 평야를 초승달 모양으로 감싸고 있는 북쪽 구릉지에 위치해 있던 데 반해, 토기 사용 시대에는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변 평야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가장 오래된 토기 생산 주거 집단의 최초의 주거지가 발견된 곳이 바로 이 지역이기 때문이다. 자르모와 움 다바기야에서 나온 토기는 매우 단순한 형태의 용기로 두껍고 무늬가 없으며, 식물성 재료를 섞어 점토 비율을 낮추어 만들었다.
이 방법은 진흙에 다른 재료를 첨가함으로써 점성을 낮추어 토기를 더 잘 굳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자르모 유적지는 자그로스산맥이 메소포타미아 저지대 쪽으로 한참 뻗어나가 있는 서쪽 완만한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자르모 지역은 떡갈나무와 피스타치오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바에 의하면 이 선사시대 촌락에서는 수백 년간, 매우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사람이 살았다. 발굴자들은 유적지를 12개 층으로 구분했다.
각 층에서는 25채를 넘지 않는 작은 마을 유적이 나왔다. 인구는 도합 150명 정도로 추정된다. 집의 기본 윤곽은 단순했다. 벽은 자연 건조시킨 롬 흙으로 되어 있었고, 이 벽을 돌로 된 기저부 위에 세웠다. 이는 오늘날까지근동아시아의 전통적 건축 형태로 계속 존재하고 있는 방식이다. 유물 중에는 흑요석 도구도 있었는데, 이 흑요석은 아나톨리아 동부에 위치한 호
수, 반 호에서 나온 것이었다. 또 장신구 제작을 위해 쓰였던 아름다운 조개껍데기는 페르시아만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런 사례들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정주생활이 시작되었던 시기에 메소포타미아 북부에서는 이미 원거리 무역이 조직되어 행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부연하자면 이러한 원거리 무역의 시초는 정주형 거주지가 형성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또한 다양한 용구와 용기가 식재료의 수확, 가공 및 저장을 위해 제작되었다.
증거 자료에 의하면 식량으로 이용된 식물로는 에머밀, 외알밀, 원시 보리와 렌틸콩이 있었다. 가축화된 동물로는 염소, 양이 있었고 후대에 속하는 지층에서 발견된 자료에는 돼지를 가축으로 기른 흔적도 있었다.
예술 창작물 자료는 드물게만 발견되었고 동물과 인간 형태 점토상에 국한되었다. 이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작은 임신부 조각상이다. 주제가 임신부라는 점으로 볼 때 이 조각상은 후기구석기시대 전통과 관련되어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자르모보다 더 서쪽, 티그리스강 상류에 위치한 움 다바기야는 강수량이 불규칙하고 장기간 건기가 지속되는 등 매우 건조한 지역이었다. 따라서 강수량이 수분 증발량보다 많아야 하는 농사는 불가능했다. 그런 이유로 움 다바기야 주거지는 특정 계절에만 사람이 살았던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발굴된 유물도 많은 부분에서 자르모 유적지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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