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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초기 주거지

인포언급 2023. 4. 6. 09:30

신석기 초기 주거지

중앙 아나톨리아를 제외한 주요 흑요석 채집장은 필뤼산과 네네지산같이 차탈회위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점토를 구워 만든 다양한 기하학적 무늬의 도장이 다량 발견되면서 이를 놓고 여러 의견이 제시되었다. 한가지 고려할 만한 견해는 사람들이 토기를 만들 줄 알게 되면서 개인 소유를 표시하기 위해 이 도장을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점토 도장은 어느 곳에서건 자립적 가정 경제가 확립될 때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옷감, 가죽, 나무 등을 장식하거나 피부에 찍어 몸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차탈회위크에서 나온 여성적 형태를 띤 소형 조각상은 일찍부터 유적 발굴자와 문화인류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 조각상을 놓고 당시 어머니 여신들이 숭배되는 모계 중심의 사회 구조가 존재했던 것인지 아니면 최소한 남녀 역할이 평등한 사회였던 것인지 여러 의견이 제기되었다.

 

이 조각상들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일명 동물들의 여왕이라 불리는 좌상으로 제II지층 가옥의 곡식 보관 용기에서 발굴되었다. 이 조각상은 두마리 표범이 좌우에서 호위하고 있는 왕좌 위에 풍만한 몸매의 여성이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조각상은 농업 경제 공동체와 관계있는 것이 아니라 사냥이 주를 이루는 생활의 관념세계나 상상세계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제기된다.

 

발굴을 진행하면서 위와 비슷한 풍만한 육체를 가진 여성이 나타나는 조각상이 다량 발견되었다. 어디에서 발견됐는지 그 환경을 관찰해봤을 때, 이 조각상은 곡식의 관리 또는 보관과 연관이 있었으리라 해석된다.

 

반면 이 조각상을 '여신들'로 해석하기에는 해당 근거가 부족하다. 더욱 이 조각상 중에는 남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도 있다. 이런 조각상은 대부분 특별히 성별상의 특징을 보이지 않는다. 즉, 이 조각상을 만든 사람들은 성별 표현에 주된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0점의 조각상 중 5퍼센트만이 분명한 여성의 몸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그 밖의 다른 증거물은 차탈회위크 사회 내에서 성역할이 평등하고 나아가 서로 대체가 가능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일례로 장례 또는 해골 숭배 의식에서 남자와 여자는 같은 방식으로 매장되었다. 노동능력 또는 음식 섭취에서도 남녀 간의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이 사회에서 성별이 개인의 역할을 규정하지 않았다는 징표라고 볼 수 있다.


임차탈회위크에서 발굴된 예술 창작물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집 내부 벽에 그려놓은 그림과 부조다. 대부분은 1960년대 발굴 초창\기에 J. 멜라어트에 의해 발굴되었다. 140채 중 4분의 3 정도의 내부 벽에 장식이 있었다. 가장 공들여 만들어졌고, 또 가장 잘 보존된 사례는 VI 층과 불에 탄 VI지층으로, 특히 후자가 더 그러했다. VI지층은 가장 많은 집의 흔적이 발견된 층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주실, 즉 주거 공간에서만 장식이 발견되었는데 멜라어트는 이 벽 장식 때문에 이 공간을 '사당' 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호칭이다. 현재는 발굴된 집들이 주거를 위한 일반 가옥이며 숭배 의식 목적에 사용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벽에는 황소 해골에 점토 또는 석고를 덧씌워 만든 부크라니움과 소해골이 하나 또는 여러 개 장식되어 있었다. 드물게는 이 장식이 기둥이나 점토로 만든 벤치에 걸려 있는 경우도 있었다. 비록 차탈회위크에서 나온 증거물은 인간 해골이 아니라 동물의 것이라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해골에 롬 흙을 얇게 발라 본을 뜨는 풍습은 예리코와 레반트 지역에서
나온 유사 발굴물을 생각나게 한다. 점토로 만든 벤치에 황소 뿔 여러 개를 열 지어 걸어놓은 경우도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VIB44호 집 서쪽 벽에서 발견된 부조로서 이 부조물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마리 표범을 표현하고 있다. 또 롭 흉벽에 야생동물 신체 중에서 날카롭고 뾰족한 부분 예를 들어 멧돼지 송곳니, 여우나 족제비 이빨, 또는 독수리 부리 등을 박아 넣은 집도 있었다. 그 밖에 팔다리를 가진 형체가 부조된 벽도 여럿 있었다. 이 형체들은 팔을 벌리고 있거나, 머리 방향으로 약간 구부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러 번 표면을 덧바르고 색칠한 것이 확인되는데, 이는 부조의 머리와 손발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벽화는 하얀색이나 크림색 바탕에 적. 흑갈색을 사용하여 제작했다. 여러 층으로 겹쳐 있는 색들은 종종 다시 칠했음을 보여준다. 기하학적 무늬가 그려진 그림은 마치 벽에 거는 양탄자 같은 느낌을 준다. 어쩌면 실제로 이를 모방해 그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림 속에 꿰맨 자국이 함께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벽에 찍은 손자국은 후기구석기시대 유럽 서남부 동굴 벽화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벽화의 주된 소재를 차지했던 것은 동물이다. 

 

그중에는 여러 사람이 야생 소, 사슴, 멧돼지, 곰을 사냥하는 장면도 있다. 놀라운 점은 벽화에서 보이는 야생동물들은 차탈회위크 주민의 식량 조달에 특별한 역할을 전혀 하지 않은 동물이라는 점이다. 일상생활에 더 중요했던 가축이나 재배 식물은 벽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여러 차례 모습을 보이는 표범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몇몇 벽화로 볼 때 한 가지 가능한 추측은 표범 털가죽을 특히 의복, 그중에서 남성 의복으로 이용했을 가능성이다. 이에 반해 표범
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상으로 볼 때 차탈회위크 주민들은 야생동물과 가축화된 동물을 완전히 분리된 두 영역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